中國吉林

‘중국 제일 축구명장’으로 불린 조선족선수 > 스포츠종합

본문 바로가기
순위표
순위 팀이름 점수
1 광주항대 30 20 4 6 64
2 상해상항 30 17 7 6 58
3 천진권건 30 15 9 6 54
4 하북화하 30 15 7 8 52
5 광주부력 30 15 7 8 52
6 산동로능 30 13 10 7 49
7 장춘아태 30 12 8 10 44
8 귀주지성 30 12 6 12 42

‘중국 제일 축구명장’으로 불린 조선족선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룡| 작성일 :18-01-01 10:13| 조회 :104| 댓글 :0

본문

f70bc85fb07a485bab60ecbe14439766_1514772

건국전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여 우리 나라 축구계에는 많은 출중한 축구건아들이 용솟음쳐 나왔다. 그 속에 조선민족의 축구영웅들은 중국의 축구사업에 마멸할수 없는 공헌을 하였다. 

 

해방전 국가팀에 입선된 선수는 모두 2명이였는데 그들로는 리혜봉(룡정시 덕신향), 정룡수(덕신향), 괴뢰만주국축구팀에 선발된 조선민족의 선수는 20여명이 넘는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후 국가팀에 입선된 선수는 35명, “최우수 선수”는 30명에 달한다. (조선민족축구사에서 1990년 중반까지 자료에 따랐음)

 

우리 조선민족축구건아들은 건국전과 건국후 중국의 각 프로팀에 포진해있으면서 주력역할들을 하였다. 건국후 일부 선수들의 사례를 든다면 국가팀에 제일 오래동안 있은 장경천(심양출신), “중형땅크”라는 별호를 달고 중앙공격수에 이름날린 리광수(룡정 조양천), 중국팀이 아세아경기에서 2등하는데 큰 공헌과 중국의 최우수 중간방어수(하프) 칭호를 받은 고종훈(룡정시), 50년대초 국가팀에서 공격수로 이름떨친 지운봉(화룡출신), 최증석(덕신향 출신) 60년초반에 당시 국무원 부총리이시며 국가운동위원회 주임인 하룡원수로부터 “당신은 철문과 같다”는 별호를 가진 중국의 유명한 꼴키퍼 박장수와 “분사식비행기”라는 별호를 달고 국제, 국내경기와 력대 국가팀에서 꼴을 제일 많이 낸 손중천명장(모두 룡정시 덕신향 출신임) 등 선수들이다. (덕신향은 중국조선족축구 발원지임)<필자—주>

 

f70bc85fb07a485bab60ecbe14439766_1514772
초중시절의 리주철(세번째줄 왼쪽 두번째).

 

아래에 소개하는 리주철(李柱哲) 명장은 건국후 중국의 축구계에서 가장 뛰여난 우리 민족의 선수이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사실에 대해 모르는 축구팬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프로축구선수들 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안다는것이 축구에 연구가 있고 로선수들이 좀 알고 있을 뿐이다. 리주철축구영웅을 소개하기전에 흑룡강성에서 용솟음쳐 나온 우리 조선민족의 걸출한 일부 영재들을 소개하련다.

 

중국의 최동단에 있는 흑룡강성은 46만평방킬로메터의 넓은 땅을 갖고 있는 성으로 우리 나라 다섯번째로 큰 성이다.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은 흑룡강성은 물산이 풍부하며 산이 있는가 하면 일망무제한 넓은 벌에는 벼, 옥수수, 밀, 콩 등 각종 경제작물과 소, 양, 젖소 등 가축들이 많이 난다. 또한 자원도 많이 난다. 례컨대 목재, 석탄, 석유 등 보물들이 많이 나 우리 나라 “보배성”이래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좋은 터전에서 우리 민족의 우수한 영재들이 많이도 배출되였다. 

 

그 사례를 든다면 1909년 10월말 할빈에서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격상시킨 애국지사 안중근, 양림(원명 김훈), 리추악(양림동지 부인), 김좌진, 최용건, 김책, 김성(김책의 형이며 녕안현 초대 서기), 허흥식 등 항일영웅들이 배출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후 체육, 문화, 예술, 과학 등 분야에서도 많은 조선족 영재들이 용솟음쳐 나왔다. 그 사례를 들면 일본에서 있은 제57회 세계빙상선수권대회에서 아세아와 우리 나라 최초로 1500메터 종합 경기에서 우승컵을 탄 라치환(해륜현) 선수가 있는가 하면 우리 나라 유명 가수 김만(원명 최진옥, 녕한현), 최경호(몽릉현), 신광호(림구현) 등 가수들이 나왔으며 평생 연변가무단에서 음악생애를 마친 안국민 1급작곡가(밀산시), 고찬모 작곡가(밀산시), 상해음악학원에서 교수로 있는 우리 나라 유명 작곡가 윤명호(오상시) 선생, 우리 나라에서 수십년간 미사일 격침을 연구하지 못하여 애로를 겪고 있을 때 할빈공업대학졸업생인 최계옥이 3년간 연구끝에 발명한 최계옥 녀과학가 등 영재들이 나왔다. 아래에 소개하는 70년대 중국축구계의 “별”이라는 리주철도 계동현 계림향 영광촌 출신이다. 실로 흑룡강성에는 굵직굵직한 우리 민족의 영재들이 많이도 배출되였다.

 

1998년 북경 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한 중국조선민족체육사대계에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중국에서 가장 우수한 조선족 축구선수가 장경천이 였다면 70년대와서는 리주철선수가 가장 출중하였다고 할수 있다》고 적었다. 그의 고향인 계동현 계림향(鸡林乡)은 북으로는 몽릉강이 유유히 흐르고 동, 남은 무연한 벌이 아득히 펼쳐져 있다. 조선족자치향인 계림은 살기가 좋기로 흑룡강성적으로 소문난 향이다. “인재가 될 사람은 어릴 때부터 다르다”고 축구와 인연이 되자고 그랬는지 리주철이는 첫돌생일상에서 하많은 물건중 유독 자그만한 빨간고무공을 선참으로 쥐여잡았다고 한다. 그가 빨간고무공을 잡자 첫돌잔치에 참가한 마을사람들은“주철이는 앞으로 크면 꼭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철이는 아장아장 걸음마를 타면서부터 생일상에 쥐였던 빨간공을 차기 시작하였다. 밤이면 누가 공을 가져갈가바 품속에 꼭 껴안고 잠들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어릴적부터 같은 또래 아이들보다 뽈차기를 무척 즐겨하였다. 혹 마을에서 돼지를 잡게 되면 돼지 방광 <방광이 공은 1872년 최초로 영국에서 탄생되였음) <필자—주> 에 공기를 주입시켜 편을 나누어 뽈을 차군하였다. 

 

f70bc85fb07a485bab60ecbe14439766_1514772
축구팀 동료들과 있는 리주철(중간). 

 

지금의 아이들은 멋지고 예쁜 축구공을 갖고 주단같은 그라운드에서 뽈을 차고있지만 생활이 째지게 가난했던 어려운 시절에는 그렇지 못했다. 돌멩이가 많은 평평한 들판에서 아이들과 함께 솜뭉치거나 짚뭉치, 짐승털을 천속에 넣어 원형모양으로 만들어 뽈을 찼다. 키가 작은 주철이가 하도 야무지게 뽈을 잘차는것을 본 사람들은 “주철이는 장차 대선수로 될것이다”라고 말하군 하였다. 어려서부터“뽈개지”로 소문놓은 리주철은 다른 아이들은 몽릉강에 나가서 고기잡이에 열중하였으나 그만은 늘 오후 늦게까지 학교운동장에서나 생산대 탈곡장에서 뽈련습을 하였다. 소학교를 졸업한 주철이는 생활난으로 하여 중학교에 다닐수 없었다. 그는 돈을 벌기위해 련주산에 있는 475비밀공장 학도공으로 2년간 출근하게 되였다. 리주철의 뽈재주를 보아낸 남철교원의 방조하에 다시 계림중학교을 다니게 되였으며 줄곧 학교팀의 선수로 활약하게 되였던것이다.

 

1943년생인 리주철은 1963년 여름 계림중학교에서 참군하여 심양공군부대 독립18탄 고사포련 포병으로 근무하였다. 한번은 사단부에서 열린 운동회에 탄부의 축구선수로 사부에서 열린 운동회에 참가하게 되였다. 이 대회가 리주철의 축구생애의 첫 발자욱을 내 디디게 한 계기가 되였던것이다. 그번 대회에서 리주철의 뽈재주를 보아낸 심양공군부대축구팀에서 인츰 데려갔다. 이듬해 전국공군부대운동대회가 수도 북경에서 열리게 되였다. 꿈에도 북경에 가고 싶어하던 리주철은 수도 북경에 가서 (자기의 축구기술을 맘껏 자랑하겠다)고 속다짐하였다. 

 

경기대회에서 교련은 리주철의 축구기술에 대한 료해가 부족했던지 전반전에 그를 출전시키지 않았다. 리주철이 소속된 팀은 전반전에 꼴 세개나 먹는 고배를 마이게 되였다. 그 누구보다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가는 선수는 리주철이였다. 그는 교련을 보고 후반전에 자기가 들어가겠다고 몇번이나 청들었다. 교련은 마지못해 후반전에 주철이를 출전시켰다. 후반전에 리주철이가 들어가자 경기 판세는 확 달라졌다. 그는 혼자서 공을 몰고들어가 두꼴이나 터뜨려 전대회에 소문놓았던 것이다.  

 

그 시기에 우리 조선족축구건아들은 다른 프로팀에는 물론 부대프로팀에도 많이 포진해있었다. 심양공군부대팀은 그번대회에서 비록 1등을 하지 못했어도 여섯껨을 치르면서 리주철은 홀로 꼴 여덟개를 넣어 전국공군부대축구경기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소문뿐이 아니였다. 그의 특수한 뽈재주를 보아낸 전국공군부대팀에서는 “보배”를 발견한듯 전국공군부대팀에서 인츰 스카우트해가자 심양공군부대축구팀에서는 아쉬운대로 리주철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리주철은 더 넓은 축구무대에서 자기의 축구기량을 발휘할수 있게 되였다.

 

전국공군부대팀의 프로선수로 된 리주철은 로축구선수들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자기의 축구기술을 더 한층 높은 수준에로 끌어 올리기에 모진애를 썼다. 

1965년 11월에 광서쫭족자치구 수부 도시인 남녕시에서 전국을급경기가 열리게 되였는데 갑급팀으로 승진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치렬한 경기대회였다. 그번 대회에서 묘하게도 흑룡강성팀에서 주력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친형인 리주찬이 들어있는 흑룡강성팀과 동생 리주철이 들어있는 전국공군부대팀간의 치렬한 경기를 펼쳐나갔다. 

 

f70bc85fb07a485bab60ecbe14439766_1514772
소학교시절의 리주철(뒤줄 오른쪽 두번째). 

 

《축구경기에서 부자간에도 한치의 양보도 없다》는 말이 있다. 두 형제는 자기 팀을 위해 추호의 양보도 없이 경기를 진행하였다. 프로팀에서 형제간이 맞붙은 경기는 극히 희소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번 경기에서 일곱개의 꼴이 났는데 형 리주찬이 세개를 넣고 동생 리주철이 두개를 넣어 당시 축구계의 미담으로 전해지기도 하였다. 

 

리주철은 축구에 대해 체계적으로 크게 배운 일은 없었지만 그의 타고난 뽈재주와 피타는 노력으로 하여 다른 선수들보다 특수한 축구기술을 장악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70년대에 중국의 축구계와 팬들이 가장 선호하는 축구선수로 거듭났다. 1960년말 리주철은 국가팀에 입선되여 7번 유니폼을 입고 우익공격수로 맹활약 하였다. 

 

필자하고 한 고향인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주임으로 퇴직한 윤봉현선생은 “그 당시 텔레비죤이 보급되지 않은 시기에 주로 방송으로 국제, 국내 축구경기를 생방송 하였지요. 국제경기나 국내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리주철선수가 북경로동자체육장에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에 나타나면 관중들은 일어나 (리주철! 리주철!)하면서 뜨거운 박수를 보내군 하였습니다…”라고 하는가 하면“리주철선수가 꼴을 터뜨리게 되면 전반 관중들의 환호는 물론 북경의 축구팬들은 다른 선수를 잘 몰라도 리주철선수만은 잘 알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았다”고 전화상으로 알려주는 것이였다. 

 

우리 나라 축구팀은 언제나 국제대회에 나가면 지군하다보니 아세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늘 등수에 오르지 못하였다. 중국팀은 월드컵선수권대회에 한번도 참가하지 못했다가 한국과 일본팀이 예선에 불참한 덕분에 어쩌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참가했어도 꼴 하나 넣지 못하고 돌아온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자고로 정신력이 부족한 중국팀은 돌출한 공격수와 중간방어수(하프)가 없는것이 큰 문제이며 지금도 매한가지이다. 

 

20년만에 출중한 우리 민족의 공격수 리주철이 국가팀에 가담하자 국가팀에는 70년부터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시기에 리주철이 국가팀에서 주력 역할을 하게 되자 한팀의 선수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경기때마다 크게 지는 일이 적어졌던것이다. 

 

f70bc85fb07a485bab60ecbe14439766_1514773
앞줄 왼쪽 두번째 리주철.

 

제7회 아세아운동대회와 제6회 아세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리주철선수를 핵심으로 한 국가팀은 뛰여난 성적을 올려 중국팀의 신심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특히 그번 대회에서 리주철선수는 그의 뛰여난 축구기교를 보여주어 그만이 “아세아 최우수 공격수”라는 칭호를 받았던것이다. 이 영예는 우리 나라 축구계에서 최초로 되는 영예이며 아직까지 이를 초과한 축구선수는 없다. 

 

리주철은 키는 작으나 몸집이 단단하고 빠르고도 령활하여 다른 운동원들보다 평시의 훈련을 잘한데서 늘 왕성한 체력을 갖고있었다. 워낙 령활한 축구기질을 갖고있는 리주철은 불꽃튕기는 경기장에 뛰여들기만하면 상대방 수비진을 돌파하는 능력이 그 어느 선수보다 돌출하며 득점기회를 자주 만들군하였으며 꼴기회를 절때 놓치지 않았다. 

 

1975년 6월 홍콩에서 아세아컵축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그번 대회에서 아세아의 최강과 막강한 실력을 갖고있는 일본팀간의 치렬한 대결에서 경기가 시작되여 20분만에 그는 홀로 공을 몰고 이악스레 련속 달려드는 수명의 일본팀 방어수를 요리조리 따돌리고 박스안에서 돌연적인 강슛을 날려 승부를 결정하는 관건적인 꼴을 터뜨려 대공을 세워 국가팀이 2등하는데 유공자로 거듭났다. 그때 그의 축구기술 표현은 아르헨띠나 마라도나 선수와 다름없었다고 한다. 중국국가팀은 력대로 아세아컵대회와 아세아경기에서 한번도 1등을 한적이 없다. 크나큰 대국으로 세계인구를 자랑하는 중국국가팀은 아세아컵축구경기에서 1등 한번도 해보지 못한 일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단지 두번의 2등과 3등도 우리 민족의 축구명장 리주철과 고종훈 명장의 발끝에서 일어난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리주철축구명장은 우리 나라 축구에 크게 기여한 선수이며 우리 나라에서 가장 뛰여난 선수이며 “별”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축구에서 가장 큰 영예를 받은 선수이다. 이는 나라의 자랑이자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그의 업적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체육운동히로부터 리주철선수한테 “”중화인민공화국 최우수 선수”, “축구건장”등 많은 칭호를 수여하였다. 리주철 명장은 2002년 59세에 뇌혈전으로 북경에서 벌세하였다. 비록 그가 우리곁을 떠났지만 국내외의 그라운드에 남긴 그의 미담들은 중국의 축구사와 우리 민족의 축구사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김원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스포츠종합 목록

Total 238건 1 페이지
스포츠종합 목록
“체육복권컵” 속도스케이트 경기 200여명 참가 “즐거운 건강, 행복길림” 길림성“체육복권컵”대중도스케트경기가 1월 16일 연길시 부르하통하 스케이트장에서 진행되였다. 이날 활동에는 길림성체육국 장진영부국장, 연변주체육국 박영철부국장, 연변주체육국 군중체육처 김호봉 처장 등 해당 부문 책임자들과 사회 각계 스케트애호가들이 참석, 길림성체육국에서 제출한 “즐거운 건강…(2018-01-16 12:06:14)
2017년 연변 축구심판원들 성과 주렁주렁 연변축구협회 산하에 심판원전문위원회를 내오고 연변축구발전에 적극적인 기여를 해왔으며 특히 최근년간에는 연변대학 체육학원과 손잡고 설립한 축구심판원양성쎈터를 통해 심판원대오양성을 체계적으로 펼침으로써 기여도를 높이고 있다. 2017년 한해에만 해도 연변축구심판위원회에서는 17가지 1209껨의 각종 경기를 집법했는데 그중 …(2018-01-11 21:14:50)
전국청소년 ‘미래의별’ 동계양광체육대회 가동의식… 전국청소년 ‘미래의별’ 동계양광체육대회(冬季阳光体育大会)는 청소년 빙설활동 브랜드이다. 1월 5일, 2018년 전국청소년 ‘미래의별’ 동계양광체육대회(길림성분회장 연길지역) 가동의식이 연길시 부르하통하 친수레저광장(亲水休闲广场)에서 열렸다. 연변주교육국 리태진 부국장은 축사에서 “이번 활동의 취지는 청소년…(2018-01-06 08:54:50)


‘중국 제일 축구명장’으로 불린 조선족선수 인기글 건국전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여 우리 나라 축구계에는 많은 출중한 축구건아들이 용솟음쳐 나왔다. 그 속에 조선민족의 축구영웅들은 중국의 축구사업에 마멸할수 없는 공헌을 하였다. 해방전 국가팀에 입선된 선수는 모두 2명이였는데 그들로는 리혜봉(룡정시 덕신향), 정룡수(덕신향), 괴뢰만주국축구팀에 선발된 조선민족의 선수는…(2018-01-01 10:13:05)
연변 축구심판원들 전국무대 주름잡는다 인기글 교정축구 전국상 휩쓸어 ‘축구의 고향’ 연변에서 전국에서 선참으로 축구심판원양성쎈터를 일떠세우고 체계적인 훈련과 지도로 심판원대오양성에 남다른 심혈을 몰부은 보람으로 젊고 유능한 축구심판원들이 속속 배출되고 전국무대를 주름잡아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2월 15일부터 이틀간 강소성 상주시에서 있은 2017년 전국 교정…(2017-12-17 17:24:23)
한중 동계스포츠 홍보단 발대식 평창-북경 화이팅 인기글 한중 동계스포츠 홍보단 발대식. 11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D-day 90일을 맞으며 한국관광공사 심양대표처는 할빈에서 한중 동계스포츠 홍보단 발대식을 가졌다. 한국관광공사 심양대표처 김용재 지사장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2022 북경-장가구동계올림픽을 응원하기 위해 동북3성의 우수한 대…(2017-11-14 14:02:20)
스포츠의 ‘꽃’ - 배구로 삶의 활력 찾는다 인기글 ​ “만약 운동을 알약처럼 포장할 수만 있다면 가장 많이 처방되고 가장 좋은 효과를 거두는 약이 될 것이다.” 한 미국 체력스포츠 전문가가 한 말이다. 이처럼 운동이 우리 삶에 갖다주는 영향은 긍정적이고 막대하다.​운동이 몸에 좋은 건 누구나 뻔히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꾸준히 견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눈코 뜰새 …(2017-09-28 18:57:45)
2017 연변•베턴 국제자전거관광축제 성대히 개… 인기글 ● 17개 나라 및 지역서 온 자전거선수와 동호인 900여명 참가 ​ ● ‘가장 아름다운 변경선, 자전거 타기를 즐기자’라는 주제로 ​ ● 세계 최대 규모의 아마추어 도로자전거경기인 스웨리예 베턴 환호수시합의 중국지역 자매경기 ​ 길림성관광발전위원회와 연변주인민정부에서 공동 주최하고 연변주관…(2017-09-25 08:47:28)
5개도시 축구 배구경기.. 길림팬들 행복한 주말… 인기글 선수단 입장식축구시합 개최식축구경기의 한장면 배구경기의 한장면9월16일 길림시조선족중학교에서 통화시, 장춘시, 훈춘시, 연길시, 길림시 조선족축구, 배구대표팀의 친선경기가 펼쳐졌다. 동북3성조선족축구친목회 길림대표처의 주최하에 진행된 이번 “룡성컵”친선경기는 길림시만리그룹 조약걸회장, 길림시룡성실업유한회사 배철훈총경리, 월드옥타장춘지회 박성일회장, 장춘 평안경외취업유한회사 남송학대표, 장춘시기업가협회 김룡규회장, 천진조선족족기업가협회 김일호회장 및 길림시 조선족기업가협회의 장기철, 조건인, 량해…(2017-09-18 06:41:16)
d6aacc07f51a58be324ca33d1abfa6f4_1502529
전호지도 꿈 "제자를 연변팀과 국가팀에 수송하련… 인기글 전 연변팀 선수 출신 연길시체육운동학교 부교장 전호: 연변 U-11 지역 선발팀과 한국 경주 화랑대기 참가​ “경험을 쌓으러 한국에 왔습니다.”​​전 연변팀 출신, 현재 연길시체육운동학교 부교장 전호지도가 연변의 U11유망주들과 한국 경주를 찾았다. 그는 연변 지역 11세 이하(U-11) 선발팀 해란강축구클럽(해란강FC…(2017-08-12 18:04:09)
연변축구의 희망 U-13팀 유럽 훈련캠프 출정 인기글 연변청소년축구가 심수부덕집단의 든든한 자금지원에 힘입어 세번째로 해외 유명 구단의 훈련캠프에 참가하게 되였다.​7월 8일 오전 10시, 연변축구꿈나무들과 학부모, 축구계 관련 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연변U-13 축구팀 이딸리아 향발 출정식”이 연변주체육학교 5층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연변주체육학교 부교장이며 이번 훈…(2017-07-10 10:13:00)
연변주체육운동학교 롱식축구훈련장 준공식 가져 인기글 ​ 29일 오후 2시 연변주체육운동학교에서는 학교롱식(笼式)축구훈련장 락성준공식을 가졌다.  북방에는 연변, 남방에는 매현. 이는 축구인들에게 일찍부터 알려진 철같은 사실이다. 중국에서 연변은 광동성 매현과 더불어 “축구의 고향”으로 불리운다. 축구는 연변에서 중요한 특색문화로, 연변을 대표하는 하나의 명함으로…(2017-06-29 16:37:45)
“북국미업컵” 아마추어슈퍼리그 결속, 북국1팀 … 인기글 2017년“내사랑축구및북국미업컵”연변축구협회 아마추어슈퍼리그가 6월 11일 오후 룡정시해란강체육장 보조구장에서 결속되였다. ​ 2017년“내사랑축구및북국쌀업컵”연변축구협회 아마추어슈퍼리그는 연변축구협회에서 주최하고 연길시축구협회에서 주관하며 연변북국미업유한회사에서 후원하는데 국제축구련맹의 &lt;축구경기규칙…(2017-06-12 08:40:23)
북국미업컵 아마추어슈퍼리그 3라운드 결속 인기글 ​ 2017년“내사랑축구및북국미업컵”연변축구협회 아마추어슈퍼리그가 4월 14일 룡정시해란강체육장 보조구장에서 제3라운드 경기를 마쳤다. 2017년“내사랑축구및북국쌀업컵”연변축구협회 아마추어슈퍼리그는 연변축구협회에서 주최하고 연길시축구협회에서 주관하며 연변북국미업유한회사에서 후원하였다.  이번 아마추…(2017-05-15 09:03:41)
미녀응원단 대신 실력으로 매혹의 조선 인기글 인천 아시아경기 조직위원회가 대회 전 최고의 흥행카드로 기대했던 건 조선의 《미녀 응원단》이였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때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미녀 응원단은 빼어난 미모와 색다른 응원을 선보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조선은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와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도 미녀 응원단…(2014-10-08 21:50:14)
게시물 검색

Copyright © 2005 인터넷길림신문 all rights reserved. 吉ICP备07004427号

本社: 長春市綠園區普陽街2366號 Tel: 0431-8761-9812 分社: 延吉市新華街2號 Tel: 0433-253-6131

記者站: 吉林 (0432) 2573353 , 通化 (0435) 2315618 , 梅河口 (0448) 4248098 , 長白 (0439) 8220209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