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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50년25]김광주-연변축구는 뿌리 깊은 나무 > 전국우승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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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표
순위 팀이름 점수
1 상해상항 30 21 5 4 68
2 광주항대 30 20 3 7 63
3 산동로능 30 17 7 6 58
4 북경국안 30 15 8 7 53
5 강소소녕 30 13 9 8 48
6 하북화하 30 10 9 11 39
7 상해신화 30 10 8 12 38
8 북경인화 30 9 10 11 37

[연변축구50년25]김광주-연변축구는 뿌리 깊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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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룡| 작성일 :15-10-27 09:02| 조회 :3,082| 댓글 :0

본문

 
 
연변팀 전국우승 50돐기념 계렬보도《영광의 주인공들 찾아서 》(25)
 
 
1. 평강벌의 축구소년으로부터 프로축구선수로
 
연변팀력사에서 가장 오래 주장으로 있은 사람을 뽑으라면 1992년 길림성팀으로부터 길림삼성팀, 연변현대팀, 연변오동팀까지 쭈욱 주장으로 있은 김광주를 뽑아야 할것이다. 1997년 신체상황으로 퇴역할때까지 5년동안 그는 연변팀의 중앙수비로 뽈도 잘 찼을뿐만 아니라 책임성이 강하고 선량하고 성실하여 팀내 선후배들의 존경과 신임을 한몸에 받았었다. 
 
슬라프나와 척무생이 이끄는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된 그는 고종훈, 리홍군 등과 함께 제12회 아세아운동회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한 공로선수로 연변축구를 세상에 알리고 전국에 알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1968년 4월 7일, 화룡시 동성향 흥성촌에서 태여난 김광주는 어려서부터 소문난 뽈군인 아버지와 소학교축구선수였던 형님의 영향으로 축구에 흥취가 있었다. 소학교 3학년때 흥성소학교 축구교원인 강길복선생(많은 소년축구인재 양성)의 눈에 들어 뽈을 차게 된것이 김광주의 축구인생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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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곤명동계훈련에서의 연변현대팀 가족사진.
 
1980년 스승을 따라 화룡시체육학교(건설소학교)로 전학한 김광주는 키가 작았지만 속도가 빨라 항상 오른쪽 날개로 뛰였는데 전국 새싹컵경기에서 1등이라는 영예도 거두었다.
 
건설소학교에서 축구 어섯눈을 뗀 김광주는 소학교를 졸업한후 방근섭, 박문호, 최광일 등과 같이 주체육학교에 입학, 축구원로 정종섭으로부터 축구를 배웠다. 연변체육학교 3학년 때 키가 크고 체력이 늘기 시작하면서 점차 팀의 주력으로 자리잡았고 전국도시운동회가 열리자 연변체육학교팀, 장춘팀, 체공팀선수들로 무어진 팀에 발탁되였다.
 
그후 김광주는 방근섭, 최광일, 한종국(문지기)등과 같이 길림성팀에 합류, 6기 전국운동회에 참가했는데 그로부터 직업축구인의 생애를 시작, 길림성축구팀에서 정식으로 활약했다.
 
1993년 전국 제7기 운동회 때 연변팀은 중국축구무대에서 크나큰 돌풍을 일으켰다. 그때 길림성팀은 소조경기에서 대련, 북경, 천진 팀을 몽땅 이겨버렸다. 당시 길림팀의 사령탑을 잡았던 리호은감독이 중국축구사상 처음으로 3―5―2 공격형전술을 구사했던것이다. 결국 5등에 머물렀지만 길림팀이 보여준 전면진공, 전면방어, 무궁무진한 체력…등은 많은 축구팬들에게 잊을수 없는 추억을 남겨주었고 중국축구에 신선한 바람을 몰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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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일본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낸 중국국가축구대표팀(첫줄 왼쪽으로부터 네번째 김광주).
 
당시 료녕팀과의 준결승전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주력수비였던 그는 팅팅 부은 다리에 주사를 맞아가며 경기를 치렀다. 그번 운동회를 통해 연변팀은 60년대 중국축구무대를 휩쓸었던 장백호랑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2.연변팀의 절대적인 주력 최장 주장으로
 
7기 운동회가 끝난 후 김광주는 고종훈, 리홍군과 함께 국가팀에 입선되였다. 연변팀의 중앙수비로 핵심선수였던 김광주는 척무생의 국가팀에서 서홍, 범지의와 같이 손발을 맞추면서 국문수비를 담당했다. 1994년 일본에서 펼쳐진 제12회 아세아운동회에서 김광주는 국가팀의 모든 경기를 소화하였으며 고종훈은 첫경기와 이란팀과의 경기에서 관건적인 꼴을 넣는 등 큰 공을 세웠다.
 
1994년부터 중국프로축구가 시작되자 연변팀은 중국 갑A리그에서 길림삼성, 연변현대와 길림오동으로 세번 이름을 바꾸면서 7년간 갑A리그를 지켰다. 이 기간 김광주는 5년간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김광주는 넓은 시야로 경기흐름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키웠고 전반국면을 돌보는 조직력을 키웠으며 넓은 흉금과 너그러운 인품으로 팀의 단합을 이끌수 있게 되였다. 이는 그가 훗날 감독으로 연변팀을 이끌수 있는 밑거름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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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북경올림픽 연길성화봉송에서 김광주.
 
《최은택감독은 중국축구에선 볼수 없었던 새로운 축구사상을 가르쳤다. 그때 수준에선 상상도 할수 없었던 전술을 기용했고 가르쳤다. 어린 선수를 과감히 기용했는데 황동춘, 정동칠, 김청 등은 최은택감독의 눈에서 발견된 축구인재들이다. 최은택은 중국축구에 새로운 의식과 정신을 가져다주었고 중국축구가 한걸음 발전하게 하였다.》 최은택감독의 수하에서 3껨밖에 뛰지 못하였지만 그에게서 받은 김광주의 교육은 자못 심원했다.
 
2001년 김광주는 자비로 일본에 건너가 축구리론을 학습하는 한편 코치 겸 운동원으로 일본 대학리그에 참가했다. 2003년 연변체육학교에 돌아온 김광주는 연변팀 후비양성에 몸을 담기 시작했다. 2007년 10월, 연변2팀 감독으로 부임한 김광주는 11기 전국운동회에 참가하면서 감독행렬에 들어섰다.
 
3. 연변팀의 사령탑을 잡고 5년
 
2009시즌 연변팀은 6륜까지 3점밖에 득점 못해 팬들의 원성이 컸다. 일전 한푼의 후원도 없는 연변팀은 자금난에서 헤여나오기 힘들었고 선수들의 로임체불로 팀내 분위기가 말이 아니였다. 이런 문제투성이 연변팀의 운명이 제7륜이 결속되자 조리감독으로 있던 김광주에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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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현대팀 팀주장 김광주선수가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장면(방태호 찍음).
 
김광주가 될가? 대부분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지만 또한 별수 없는 선택이라 모두 숨을 죽이고 김광주감독을 지켜볼수밖에 없는것이 그 당시 팀과 팬들의 심정이였다.
 
김광주는 사령탑을 맡은후 팀의 단합으로 선수들에게서 잃어졌던 승부욕을 부활시켰고 연변팀에 맞는 기전술을 활용하기에 노력했으며 그 기전술에 따라 용병 기용여부도 결정했다.
 
2009시즌 6위, 2010시즌 3위, 2011시즌 10위, 2012시즌 13위…연변축구구락부가 재정난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이루어낸 성적표이다. 해년마다 투입되는 자금이 1000만원도 되지 않다보니 선수들의 로임은 밀렸다가 이듬해에 주는 일이 비일비재였고 선수를 타구단에 팔아 로임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2011년에는 자기 돈 20만원을 내놓아 선수들의 로임을 발급한 일도 있었다.
 
4. 김광주가 보는 연변과 연변팀과 연변축구팬
 
자금투입이 비슷했던 시기인 2014년과 2015년의 을급리그 강등과 슈퍼리그진출을 두고 김광주의 견해는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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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시절 고종훈선수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긴 김광주선수(오른쪽).
 
첫째; 용병영입문제. 2014년에는 김도형, 김기수, 원태연, 로란 등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팀을 도와주지 못했고 오히려 팀분위기를 망쳤다. 2015년에는 박태하감독이 탁월한 안광으로 출중한 용병을 영입했고 용병들과 본토선수들이 호흡이 잘 맞았기에 서로 힘이 되였다.
 
둘째; 감독과 선수의 소통문제. 2014년에는 선수와 감독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였기에 팀 단합이 잘되지 못했고 빈번한 감독교체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2015년에는 박태하감독이 선수들의 마음을 잘 읽어주었고 따스한 사랑으로 선수들을 한사람같이 단합시켰다. 이런 팀은 좋은 성적을 낼수밖에 없다.
 
셋째; 선수들의 년령구조. 1997년의 오동선풍이나 1998년의 거물사냥군과 같은 그 시기 선수들의 년령구조와 현재의 연변팀의 년령구조가 비슷하다. 지난해에도 년령상 좋은 시기였으나 리호걸, 김파 등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였고 일부 로장들은 체력이 하강된 시기였다.  
 
연변장백산팀의 슈퍼리그진출소식을 한국에서 접한 김광주는 자랑스럽고 더없이 기쁘다고 하면서 팀에 알맞은 기전술을 구사하고 선수들의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낸 박태하감독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그는 중국땅 그 어디를 가도 연변처럼 축구분위기가 뜨거운 고장은 없었으며 연변의 축구팬들처럼 자기팀을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은 없었다고 하면서 뿌리 깊은 나무가 강풍을 두려워하지 않듯 연변팀의 뒤심과 힘이 되여주는 연변주정부와 연변축구팬들이 있는 한 연변팀은 슈퍼리그에서도 오또기처럼 장수할것이라고 확신했다.
 
/ 김룡 김태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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