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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50년27]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방어수-박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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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룡| 작성일 :15-11-16 10:12| 조회 :1,8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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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팀 전국우승 50돐기념 계렬보도《영광의 주인공들 찾아서 》(27)

원 길림성축구팀의 중앙방어수 박광순에 대한 이야기
 
 
11월 중순 초겨울의 입구에서 원 길림성축구팀의 초창기 중앙방어수로 활략했던 박광순옹을 만났다.

《길림성축구팀의 초창기 멤바에서 저는 항상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선수로 각인받고 있습니다》박광순옹과 마주앉아 서운함이 묻어나는 첫마디 말을 들으니 저으기 마음이 무거워났다.

연변팀 전국우승 50돐기념 뜻깊은 나날을 맞이하면서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박광순옹을  그토록 힘들고 괴롭히게 했을가?기자는 의문나는  호기심을 지닌채 박광순옹과의 대화를 풀어나갔다.

1945년 화룡시 숭선진 시만골에  김만필이라는 한 젊은 교원이 그 당시 도회지로 불리운 화룡에서 시골학교에 전근해왔다. 그때  11살밖에 안된 박광순은 15명에 달하는 소학교 반급 동학들과 함께 새로 학급담임을 맡은 김만필선생님의 지도하에 축구를 처음 접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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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길림성팀 설립시 선수들과 함께 있는 박광순(뒤줄 오른쪽 두번째).

김선생님과 학생들은 시골학교 운동장의 풀을 뽑고 물곬을 새로 빼면서 축구운동장을 만들었다.그곳에서 박광순은 기타 동학들과 함께 짬짬히 김만필교원의 정성어린 지도를 받으며  축구기량을 익혀갔다. 그후 숭선공사운동회에서 박광순은 공을 다루는 모습이 남달랐고 싹수가 보여 동네방네 소문이 자자했다.

1950년 박광순은 조선 무산에서 초중을 다녔다.그곳에서도 그는 축구를 잘해 신동이라는 별칭을 달고 다녔다.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조선전쟁이 발발해 박광순은 고향에 돌아와 휴식하다가 1952년 화룡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그곳에서 박광순의 축구기량은 나날이 늘어만 갔고 1954년에는 길림성중등전문학교 륙상경기에 참가해 110메터 허들경기에서 우승이라는 성적도 안아왔다.

 1955년 19살 나던해에 박광순은 인생에서 전환점을 맞이했다.그해 6월 그는 뛰여난 신체소질과 축구기량으로 조선족을 위주로 한 길림성축구팀 초창기 선수명단에 뽑혀 정식으로 길림성축구팀의 선수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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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리광수, 지운봉, 허명룡, 동경춘 등 선수들과 함께 있는 박광순(중간줄 오른쪽 두번째).

그때로부터 길림성축구팀에는 등번호 2번을 단 박광순이라는 날씬한 체격에 준수한 외모를 갖춘 중앙방어수가 경기장을 주름잡는 모습이 나타났다.

1956년 상해에서 전국경기대회에 나선 박광순은 팀의 방어를 잘 조직해 소문이 났다.

길림성축구에 몸담고 훈련하는 기간 박광순은 늘 훈련에 열중하였다. 훈련이 끝난후에도 늘 훈련장에 홀로 남아 축구기본공훈련을 부지런히 련마했다.

1958년 박광순은 길림성축구팀의 일원으로 전국갑급련맹경기에 참가했다.

그번 경기에서 박광순은 중앙공격수인 리광수, 지청룡, 손중천선생한테 공을 섬기고 대방의 공격을 차단함으로서 길림성팀이 4등의 영예를 안아오는데 공헌했다.
그해 팀은 국가를 대표해 구쏘련에 가서 친선경기대회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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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0월 조선팀과 경기후 기념사진을.

우즈베끼스딴가맹공화국 수도 따슈껜뜨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게 되였는데 당시 구쏘련에서 명성이 뜨르르한 공격수들은 늘 박광순한테 걸려 번번히 공격이 무산되게 되였다.그리하여 구쏘련선수들은 박광순를《철옹성》이라는 별명을 짓기까지 하였다.

그번 방문시합에 길림성팀은 7전 4승 2무 1패의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때 구쏘련 신문들에 그의 사진과 함께 사적이 실리기도 했다.

 1959년 제1회 전국운동대회에서 박광순은 오른쪽 방어수를 맡게 되였는데 대방공격수들은 항상 박광순한테 걸려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졌다.그번 대회에서 박광순의 이름은 만방에 더욱  알려지게 되였다.

1960년 박광순은 중국을 대표해  조선방문경기에 나섰다.당시 길림성팀은 조선에서 강팀으로 알려져있던 조선교통성팀을 5:1로 대승했는데 이렇게 화려했던 길림성축구팀 후방에는 2번 박광순선수가 있었다.그번 경기에서 박광순은 방어를 잘해 길림팀이 승리하는데 한몫 했으며 또 한번 조선축구계를 들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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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북경 선농단체육장에서 웽그리아감독 브스까스와 기념사진을.

이렇게 박광순은 길림팀축구팀  창립초기 5년간 치른 30여차례 외국팀과의 모든 경기를 주전으로 뛴 선수로 기록을 남겼다.

그해 귀국한후 박광순이 한창 더욱 큰 포부와 꿈을 가지고 희망에 부풀어 있을때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어느날 훈련이 끝난후  숙소로 돌어왔는데 불시로 눈앞이 캄캄해나며 자리에 쓰러졌다.병원으로 호송된 박광순은 눈앞에 놓인 진단서를 보고 믿을수 없었고 할말을 잃었다.

장기간의 고강도 훈련과 빈번한 시합으로 박광순한테 간염이라는 병마가 찾아왔던것이다. 더욱 믿을수 없는것은 의사가 진단서에 축구를 단념하라고 권고한것이였다. 그후 그는 훈련을 중지하고 치료에 전념했다.그 러나 1963년 병세가 호전을 보이지 않자 박광순은 그토록 애착을 품고 일심전력으로 노력해왔고 사랑했던 길림성축구팀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때로부터 등번호 2번을  새긴  박광순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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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광주에서 펼쳐진 구쏘련국가팀과의 경기입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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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구쏘련 경기에서의 박광순.

길림성축구팀을 떠난  박광순선생은 선후하여 연변주운수공사와 연변주교통국에 몸 담고 있으면서 과외축구선수로 활약하였고  짬짬히 화룡중학교와 서성중학교에  내려가 학생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축구의 보급과 발전,후비력 양성에  자신의 힘을 바쳐왔다.

박광순축구원로는 1996년 퇴직한후에도 원로축구팀에 가담해 마를줄 모르는 축구에 대한 사랑을 이어오기도 했다.

올해 81세 고령의 박광순옹은  오늘도 날렵하게 모아산에 오른다.

몸은 비록 축구무대를 떠났지만 축구에 대한 사랑과 애착은 여전히 떠날줄 모른다.
특히 올해 연변장백산축구팀이 갑급리그 우승과 슈퍼리그 진출이라는 성적을 안아온데 대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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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원로축구팀선수들과 기념사진을 남긴 박광순(뒤줄 왼쪽 다섯번째).

박광순옹은 연변팀의 래년 슈퍼리그 경기에 대해 선수들의 수준이 일정한 단계로 올라섰기에 치렬한 슈퍼리그경기에서도 중상등은 문제가 없다고 예언한다.

마지막으로 박광순옹은 연변의 축구가 새로운 단계로 올라가자면 유소년축구로부터 틀어쥐여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길림성축구팀의 자랑스러운 방어수로 활략했던 박광순옹, 길림성축구팀의 승리와 영광을 위해  자신의 청춘과 정열을 바친 명선수임에 틀림없다. 그가 축구장에 남긴 자욱은 우리민족의 축구사에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차분히 남아있을것이다.

/강동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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