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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2)김해수편 > 전국우승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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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강소소녕 30 13 9 8 48
6 하북화하 30 10 9 11 39
7 상해신화 30 10 8 12 38
8 북경인화 30 9 10 11 37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2)김해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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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룡| 작성일 :18-11-21 11:14| 조회 :426| 댓글 :0

본문

소년팀의 ‘뚝곰’―김해수가 돌아보는 축구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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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수선생. 

 

“솔직히 말하면 70년대에는 흔들거리며 무미하게 보냈지요…”  

 

땡볕, 여름의 7월 9일, 낮온도는 32℃이다. 연변대학 로인활동실에서 만난 김해수(金海洙, 71세)선생의 웅장한 몸체와 웃음꽃이 핀 실눈에 반한 필자는 김해수옹의 첫인상이 호방하고 허심하며 침착하면서도 과단성이 강한 호남아였다. 

 

“이목구비가 바르고 인자하고 락관적이며 패기가 있는 리더형 운동건장답습니다.” 

 

해수선생에 대한 녀성들의 평가를 듣고서 필자는 본 기사의 배합사진으로 찍은 해수선생의 초상을 부인에게 보였더니 하는 말이다. 

 

“미안하지만 저에게는 글이 될 만한 얘기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글쎄요, 글이 되고 안되고는 필자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그저 질문에만 답해주십시오.” 

 

수인사를 끝내고 시작한 인터뷰를 화자와 답자의 채록 그대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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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순원로와 기념사진을.

 

축구‘신동’으로 시작한 축구인생이다. 해수선생은 1947년 음력 2월에 연길현 태양향 신흥촌의 농민 김승옥(선임 주당위 부서기)의 2남 1녀중 맏이로 태여났다. 일곱살에 태양소학교에 입학한 해수선생은 어린 나이에 왕복 10리 길을 오가며 학교를 다녔는데 뽈차기가 그렇게도 재미있을 줄이야! 그 때 헝겊뽈과 ‘돼지오줌깨뽈(돼지의 방광을 불어 늘리며 말리운 공기뽈)’은 그를 떠날 수 없는 ‘생필품’이였단다. 

 

그의 축구인생은 소학교 4학년 때 태양소학교 축구대에 입대하여 5학년 땐 연길시중앙소학교 축구대로, 중학교 땐 연길시2중 축구대에 입대하여 대장으로 발탁되면서 시작되였다. 

 

1964년 청도에서 열린 전국소년축구경기 때 길림성에서 룡정중학교팀과 연길시2중팀이 참가하였는데 그번 경기에서 연길시2중팀에서 광동의 매현팀을 1:0으로 전승하여 그는 “발법이 좋고 뽈 통제를 잘하며 속도가 빨라 1등공격수(前锋)다.”라는 평가와 함께 길림의 ‘뚝곰’이라는 별호를 가졌다. 

 

청도경기후 공청단중앙과 국가체육위원회에서는 련합으로 광동의 매현팀과 길림성의 연길시2중팀을 합일팀으로 조직하여 한주일간이나 북경유람을 시켰는데 그  때 하룡, 엽검영, 곽말약 등 당과 나라의 지도자들이 접견하는 영광을 지님으로써 하룡 원수와 김해수선생이 악수하는 사진이《인민일보》에 실렸다. 

 

청도전국소년축구경기에서 소문을 떨친 그는 돌아오자 길림성청년팀, 길림성팀에 입대하여 공격수(中锋)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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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1회 한국 제주장수국제축구대회에 참가한 연변희군름팀과 김해수선생(뒤줄 왼쪽 첫번째).

 

“솔직히 말하면 70년대에는 흔들거리며 무미하게 보냈지요.” 

 

1966년, 길림성팀에서는 처음으로 대련에서 열린 전국갑급경기(제1륜)에 참가하였는데 그 때 각 팀에서는 1, 2조로 나뉘여 경기를 진행하였는데 해수선생은 2조에 편입되였다가 료녕팀과 찰 때 1조에 편입되여 료녕팀을 1:0으로 전승하였다. 

 

그 후에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여 길림성팀에서는 제2륜 경기도 못하고 선수 아홉명만 남기고(실제상 해산되였음) 나머지 선수는 전부 공장에 내려보냈다. 

 

1969년이 아니면 1970년에 광주에서 전국축구련맹경기를 하였는데 그 때 구호가 “우의 제1, 경기 제2!”였는데 경기에서 길림팀에서는 4위를 하였다. 

 

광주경기후 길림성에서는 사회적으로 축구운동원을 모집하여 성팀을 재조직한 후 성팀본부를 장춘에 이사시켰다. 

 

장춘으로 간 성팀은 관리가 락후한 데다가 운동원 로임이 낮고(축구대원들의 월급이 31원, 교련의 월급이 36원) 훈련까지 잘하지 않아서 정말 재미가 없었단다. 축구대원들이 다른 부문으로 전근하려고 해도 조직에서 보내지 않아 그는 매일 “책만 봤다”. 온밤을 책을 본 그는 늦잠으로 아침 조회까지 불참하면서 온 오전을 잤고 오후엔 남호에 가서 수영을 하고 축구훈련에서는 흉내만 냈단다. 그래도 특별한 발재간 덕분에 1971년에 출국하여 평양에서 뽈을 찰 기회가 생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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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원로팀에서의 김해수선생(첫줄 왼쪽 두번째).

 

1974년에 전국축구련맹경기를 회복하기 전 4년간은 여름이면 경기에 참가하고 겨울이면 남방에서 훈련을 하면서 두루두루 지냈는데 그 때 길림성축구팀의 규률이 란잡하기로 류동수(키퍼)선수가 친구를 전송하느라고 끌신을 신고 장춘기차역에 갔다가 아예 그 걸음으로 도문에 다녀와도 책벌이나 후론이 없었다고 한다. 

계속하여 해수선생은 길림성청년팀(성3대) 교련으로 등용되고서도 팀을 떠나 기본로선공작대에 뽑혀 2년 반이나 연길현 동성향에서 ‘계급투쟁’을 하였다니 정말 말이 아니였다. 

 

1978년, 그는 성전업팀을 떠나 주체육위원회에 전근되여 군중체육과 축구연구실(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연변대학에서 꾸리는 주간부양성반에 뽑혀 2년간을 공부하게 되였다. 그런 후 1984년부터 주체육위원회에서 과장, 축구반 주임, 경기처 처장, 군중체육처 처장, 총회 비서장(부주석 겸함) 등 직책을 맡고 지내다가 연길시6.1유치원의 원장으로 지낸 부인이 사망되자 천진에 있는 한국의 모 무역회사에서 15년간을 중국측 경리로 일하다가 5년 전에 연길로 돌아왔다. 

 

재직기간에 그는 주정협 상무위원으로 두기를 지냈고 전국소수민족운동회 재판장으로 추대되였으며 연변청년팀을 이끌고 조선의 평양에서 한달간의 훈련을 지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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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날씨에도 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김해수선생.

 

“70년대에는 전국적인 축구풍기가 없었고 축구운동원들도 이름만 걸고 허송세월하며 축구가 전도 없어 참군이나 대학입학을 시도했답니다.” 

 

“그래도 길림성팀에서는 전국경기에 나가면 늘 8위 안에는 들었지요.” 

 

자랑할 만한 운동원과 잊지 못할 경기라면 어느 것인가 하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길림성대의 미드필더로는 장홍근(한족), 하프로는 장경천(조선족)으로 두 장씨가 잘 찬다고 소문이 났지요.” 

 

“통쾌한 경기로는 광동팀과의 경기에서 내가 페넬티킥을 멋지게 차서 통꼴을 낸 것입니다. 그 때 내 사진이 많은 신문에 실렸습니다.” 

 

“정말 아쉽던 경기로는 북경팀과의 경기에서 1:0으로 다 이긴 경기를 경기결속 2분만에 련속 두꼴을 내줘 지고 만 경기입니다.” 

 

“축구란 뭐길래 그렇게도 관중을 사로잡습니까?” 

 

하는 물음에 그는 대답하였다. 

 

“운동 가운데서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운동입니다. 축구운동원은 몸이 좋고 근력이 탄탄하므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고 운동원을 놓고 말하면 축구장에 들어가면 정신없이 뽈을 차게 되고 끝나면 모든 잡념을 쓸어내고 피로했던 몸도 결국은 풀립니다. 

 

축구가 매력적이고 인기가 높은 것은 뽈을 뺏고 빼앗기고 눈치가 빠르고 재치 있게 가동작을 하고 개인적으로 잘해야 하지만 또 집단적인 배합이 잘되여야 하고 실수도 있는 등으로 축구장의 흐름에 따라 관중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며 기뻐도 하고 속도 태우게 하는가 하면 마음을 졸리기도 하고 안타깝다 못해 소리를 지르며 욕도 퍼붓고… 아무튼 사람들로 하여금 숨김이 없이 모든 심정을 토로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 축구입니다. 축구는 부부간에도 말다툼을 시키고 세대간에도 서로 버성기게 하지요. 하하하…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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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백운축구팀 선수들과 함께. 

 

연변축구에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말씀을 하려는가 하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는 참 힘든 물음입니다. 우리처럼 축구출신의 사람들이 말한다면 현직에 있는 분들이 같은 말이라고 해도 달리 듣고 달리 리해할 겁니다. 연변축구가 발전하려면 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난 세기에 조선족들이 ‘축구열’로 한참 끓고 있을 때 한족들은 ‘잠자는 사자’처럼 잠을 자고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잠자던 사자’가 잠에서 깼고 체력적으로 한족들이 키가 크고 속도가 빠릅니다. 그런가 하면 경제시대에 연변이 경제실력이 약해 재간이 있는 외원을 초빙할 수도 없고 축구운동원들도 경제수입이 높은 팀으로 가려고 하지요. 이는 당분간 막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지도간부들을 놓고 봐도 당년의 주덕해동지처럼 축구를 사랑하고 관심하는 간부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연변에서 이 모든 현실에 대처하고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려면 퍼그나 시간을 소요해야 합니다. 이 밖에 내가 바라는 점은 각 시와 현에서 축구학교를 잘 운영하여 연변축구팀에 예비운동원을 제공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진 글/ 김룡 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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