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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상해신화 30 10 8 12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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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3)리광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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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룡| 작성일 :18-11-26 08:50| 조회 :1,350| 댓글 :0

본문

갑A리그를 주름 잡은 주장―1990년대 연변팀의 핵심중앙수비수 리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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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광호.

 

지난 세기 90년대에 중국축구의 최고무대인 갑A리그에서 연변팀의 든든한 주장으로 뛰면서 중앙수비선에서 맹활약하던 축구선수가 있다. 3번 유니폼을 입고 연변축구의 궐기와 발전에 자기의 젊음을 아낌없이 바쳤던 공신, 수많은 축구팬들에게 키 크고 멋진 수비수의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선수—그가 바로 연변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던 리광호이다. 

 

1971년 9월, 왕청현 신흥향 영신촌에서 태여난 리광호는 어려서부터 뽈차기를 매우 즐긴 축구신동이였다. 어려서부터 자기 또래에 비해 키가 큰 축이였던 리광호는 뽈을 다루는 기술도 또래에 비해 한수 우였다. 

 

그런 리광호가 “고기가 물을 만난 격”으로 과학적이고도 체계적인 축구 훈련과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82년 9월, 연변체육운동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4년간의 체육학교 학습과 훈련 과정에서 리광호는 연변주내 축구계의 경험이 풍부한 지도원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엄격한 훈련을 받았고 계통적으로 축구 리론과 기교에 대해 공부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기간 리광호는 항상 품행과 성적이 우수했으며 이는 또한 그가 후날 길림성팀의 선수로 크게 활약할 수 있게 된 든든한 기반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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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의 리광호. 

 

1986년, 리광호는 연변체육운동학교를 졸업한 후 길림성청년축구팀에 선발되였으며 이듬해에 길림성청년축구팀을 대표하여 전국청년축구련맹경기에 참가함으로써 우승의 영예를 따내기도 했다. 팀에서 표현이 줄곧 우수했던 리광호는 이듬해인 1987년에는 “닫는 말에 채찍질하는 격”으로 길림성축구팀의 선수에 선발되여 직업축구생애의 힘찬 첫발을 내딛게 되였다. 

 

1988년에 길림성팀에서는 련맹경기에 참가하게 되였다. 갓 팀에 선발된 리광호는 아직 젊고 경험부족으로 경기장에 나서는 차수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락심하지 않고 평소의 훈련에서 땀동이를 쏟으면서 하루빨리 팀의 주력으로 뛰기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988년 8월, 리광호는 국가청년팀에 입선되는 행운을 잡았다. 이듬해인 1990년 1월, 리광호는 국가청년팀에 들어 로씨야에서 있은 국제축구요청경기에 참가하였는데 중국팀에서는 3위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1990년에 있은 아시아청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리광호는 중국국가청년팀의 주력선수로 전부의 시합에 모두 참가하면서 중국팀이 준우승을 따내는 데 적극적인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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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곤명에서의 연변현대축구팀. 

 

국가청년팀에서 시야를 한층 더 넓히고 날개를 굳힌 리광호는 길림성팀에 돌아온 후 팀의 주력위치에 자리를 잡았으며 전부의 청춘을 중국축구사업에 이바지할 격정과 희망으로 가슴을 불태웠다. 

 

1991년도에 전국축구갑급련맹 B조경기에서 길림성축구팀에서는 수준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갑급련맹 A조경기 진입에 실패했다. 1992년에 와신상담으로 실패를 달가와하지 않은 길림성팀의 리광호를 비롯한 축구선수들은 전국축구갑급련맹 B조 경기에서 ‘동북호랑이’의 완강한 박투정신과 강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기정신으로 똘똘 뭉쳐 준우승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따냈다. 이와 함께 갑급련맹 A조경기 진입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어냈으며 길림성축구의 오랜 숙망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했다. 

 

이 해에 리광호는 팀의 훈련과 경기에서 작풍이 완강하고 주력선수의 모범역할을 잘 발휘하여 선진사업일군으로 평의, 선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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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연변현대자동차축구팀 집단사진. 

 

1993년도는 전국운동대회가 열리는 해였다. 이 해에 소집된 제7차 전국운동회 축구결승경기에서 길림성축구팀에서는 중국축구무대에 거세찬 ‘동북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길림성축구팀에서는 독특한 경기전술과 완강한 작풍으로 5위라는 력사적인 성적을 따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길림성축구팀의 ‘전면공격’, ‘전면방어’의 전술은 저조기에 처해있던 중국축구무대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1994년부터 우리 나라의 직업축구련맹경기가 정식으로 막을 열었다. 제일 첫 진으로 진정한 직업축구련맹경기에 참가하게 된 리광호는 길림삼성팀의 주력선수로 전부의 경기를 모두 소화하면서 자신의 축구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1995년, 길림삼성팀에서는 연변현대자동차팀으로 이름을 바꾸고 갑급리그 A조련맹경기에 나서서 7위의 성적을 따냈는데 리광호도 련맹경기에서의 표현이 빼여나서 선진사업일군으로 표창을 받았다. 

 

연변에서 나서 자란 리광호는 고향의 축구팀을 위해 뽈을 찬다는 데 더없는 자랑과 긍지를 느꼈고 경기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군 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연변현대자동차팀은 연변오동팀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1997년부터 리광호는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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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세기집단축구팀 감독진.

 

팀의 주장을 맡은 후 리광호는 항상 이신작칙하면서 경기와 훈련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모범이 되기 위해 힘썼다. 특히 리광호가 팀의 주장을 맡은 1997년도에 한국감독 최은택의 지휘하에 연변팀에서는 중국축구무대에서 거세찬 ‘오동선풍’을 불러일으켰으며 4강까지 들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연변오동팀은 전국을 들썽하게 울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오동현상’이라는 주류매체들의 집중조명을 받기도 했다.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경제적 어려움과 인재결핍 등 원인으로 연변축구는 날이 갈수록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리광호는 어려운 때일수록 축구팀의 주장으로서 락심하지 않고 대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에 힘썼다. 2000년에 연변오동팀이 갑급리그 B조에 떨어지면서 리광호와 대원들은 절강록성구락부에 팔려가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절강록성팀에서도 리광호는 계속 주장으로 활약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축구를 위해 헌신한다는 축구인의 사명감을 안고 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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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리광호 감독.

 

2002년에 리광호는 연변2팀이 전국축구을급련맹경기에서 갑급리그 진출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연변축구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올 결심을 내리게 되였다. 연변에 돌아온 후 리광호는 연변팀에서 조리지도원 겸 축구선수로 일하면서 연변의 유명한 축구감독 리호은과 함께 을급련맹경기무대에서 밤낮이 따로 없이 전전하였다. 2002년과 2003년에 연변팀은 선후로 을급련맹경기 결승단계에까지는 들어갔지만 갑급리그까지 가는 데는 실패했다.  

 

2004년, 리광호는 퇴역을 선포하고 정식으로 연변팀의 조리감독으로 되였으며 중급감독증서까지 따냈다. 이 해 본토배기 감독인 고훈의 인솔하에 연변팀에서는 전국을급련맹경기에서 훌륭한 성적을 따냈으며 갑급리그무대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연변팀에서는 새로운 세기에 들어와 갑급리그무대에 복귀하는 첫번째 분투목표를 실현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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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리광호 감독. 

 

2005년부터 리광호는 계속해서 연변팀의 조리감독사업을 맡아하면서 고훈 감독을 협조하여 전국축구갑급리그경기에 참가함과 동시에 연변팀에서 중국축구갑급리그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데 적극적인 기여를 하였다.  

 

2008년도부터 리광호는 축구감독원사업을 접고 사업의 수요로 연변축구협회에서 사업하고 있다. 리광호는 비록 연변축구의 최전선을 떠났지만 연변축구의 후방에서 지금도 자신의 빛과 열을 연변축구사업의 발전을 위해 깡그리 이바지하고 있다.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경력에서 축구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축구는 이제 내 생명의 중요한 한 부분과도 같습니다.” 

 

향후 타산에 대해 리광호는 “연변팀이 잘되려면 후비력량이 든든해야 한다”면서 “연변의 청소년축구인재양성을 위해 평생의 힘과 열을 남김없이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 길림신문 김룡 안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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