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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4)문호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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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룡 작성일18-12-24 09:10 조회3,3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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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팀 선수로 슈퍼리그에서 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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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일.

 

“밝고 씩씩한 젊은이구나.” 

 

경기장에서 날파람을 일구던 모습과는 달리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호일이의 첫 인상은 이러했다. 

 

“연변팀 유니폼을 입고 연길에서 슈퍼리그를 하고 싶었는데 평생 유감으로 남았습니다.” 35세의 문호일은 그렇듯 연변팀을 사랑했고 연변축구를 사랑했으며 연변을 사랑하고 있었다. 

 

도문시 태생인 문호일(1983. 5. 11)은 도문시제2소학교와 도문시제5중(도문시체육학교)을 거쳐 1997년에 연변체육운동학교에 입학하였고 졸업을 앞둔 1999년에는 리호은 감독의 눈에 들어 연변2팀에 합류하였는데 1년 남짓이 조선전지훈련을 다녀왔다. 2000년에 연변오동팀이 갑B로 강급하고 그 팀마저 절강에 팔리워가자 열일곱살 나는 애숭이선수인 문호일은 한광화, 한송봉, 백승호, 정림국 등 동년배 선수들과 함께 리호은 감독을 따라 중국축구을급련맹전을 뛰면서 연변축구의 재기를 위해 마멸할 수 없는 공훈을 세웠다. 오늘날의 연변팀은 기실 이들을 주축으로 무어진 축구팀의 후신으로서 팀의 정신력과 집단전술 등은 모두 그 때 잉태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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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의 문호일(김홍석 찍음). 

 

“1708, 이 수자는 제가 조선전지훈련 때 들었던 호텔방 번호입니다. 그 때 그 곳은 정전이 자주 되다 보니 하루에 네번씩 두 발로 17층을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그 때 체력이 가장 많이 올랐을 것이라고 우스개로 말하는 호일이는 강도 높은 훈련에 비해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한다. 조선의 마라톤선수들과 함께 40키로메터 달리기, 8,000메터의 묘향산 왕복달리기 등을 하고 나면 목에서 겨불내가 났고 밥상에 마주앉으면 돼지고기 흰살이 어찌나 맛있는지 선수들끼리 흰살 빼앗아먹기까지 하였다니 그 고생을 짐작할 수 있다. 

 

“요만한 고생도 못 이겨내면 프로선수는 꿈도 꾸지 말아라.”는 리호은 감독의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는 호일이는 “그렇게 축구를 좋아하기 시작하였지요. 축구가 내 인생이라고 생각까지 했고 경기장에서는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뛰여다녔지만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하고 그 때를 회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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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세기팀시절의 문호일(방태호 찍음). 

 

“우리가 을급리그를 4년간 뛰고 갑급리그에 올라왔어요. 첫 3년은 리호은 감독이 지휘하였고 마지막 해에는 고훈 감독이 지휘하였어요.”

 

2005년부터 연변팀의 주력공격수로 갑급무대를 누빈 문호일은 당해에 다섯꼴을 기록함과 동시에 국내선수들 가운데서 전도가 유망한 공격수로 급부상하면서 슈퍼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2006년 시즌은 문호일이 연변축구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 한해이기도 하다. 홀로 열두꼴을 기록하면서 연변팀의 축구사상 본토선수 최다득점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 해 7월 22일, 룡정시해란강경기장에서 펼쳐진 상해강박팀과의 경기에서 문호일은 10분 사이에 중국국가대표팀 키퍼였던 강진의 열손가락관을 세번이나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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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조선 전지훈련시 리호은 감독, 한송봉선수와 함께. 

 

 “국가대표팀의 문지기였기에 그가 지키는 꼴문을 가르는 감각은 뭐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극적이였지요.” 

 

당시 경기상황을《인터넷길림신문》에서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상승세를 타던 연변팀에서는 20분 만에 천학봉이 조명의 롱패스를 이어받아 금지구역에 돌입, 두명의 수비를 멋지게 따돌리고 살짝 넘겨준 공을 문호일이 힘찬 강슛으로 추가꼴을 터뜨렸다. 흥분된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 힘입어 연변팀의 공격은 갈수록 날이 섰다. 25분 만에 맹활약을 보이던 천학봉이 재차 변선돌파에 성공하여 금지구역에 패스, 문호일이 훌쩍 솟으면서 멋진 헤딩슛으로 3호꼴을 터뜨렸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대방의 수비진영을 헝클어놓던 문호일은 30분 만에는 정림국의 코너킥을 받아 또다시 꼴그물을 갈라 10분 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이 날 경기에서 호일이는 두 발과 머리로 대방의 꼴문을 세번 갈랐고 연변팀에서는 최종 6:0으로 상해강박팀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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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에게 시범동작을 보여주고 있는 문호일. 

 

연변에서 뽈을 찰 때를 회억하면서 그는 축구의 어섯눈을 띠워준 도문시5중의 장룡운선생님, 축구의 의미를 깨우쳐준 연변체육운동학교의 조인철 감독, 프로축구의 길로 이끌어준 리호은 감독, 그리고 현대축구의 전술과 축구의 가치를 가르쳐준 고훈 감독에 대해 항상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밝힌다. 

 

“그들이 없었다면 축구선수 문호일이 있을 수 없지요.” 

 

문호일은 2007년에 슈퍼리그 장사금덕구락부에 이적하여 네개 시즌에서 106경기에 참가해 17꼴을 기록하였는데 2007년 시즌에선 여섯꼴을, 2010년 시즌에선 다섯꼴을 넣어 팀의 득점왕으로 활약했으며 조선국가팀의 부름을 받기까지 하였다. 

 

“그 때 조선국가팀의 감독이 사람을 보내여 저와 만났습니다. 조선에서 뽈을 찬 기록이 있고 조선에 여덟차례나 다녀왔으니 조선국적을 신청할 수 있으며 조선국가팀을 대표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였습니다.” 

 

그 때 호일이가 조선국가팀에 가담했더라면 정대세와 같이 월드컵을 뛰였을 것이고 그 후의 축구인생도 다른 궤적을 달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호일은 이에 대해 중국공민으로 연변에서 태여나 연변에서 축구를 배우고 연변축구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중국프로축구를 하게 되였는데 일시적인 영광을 위해 그런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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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팀경기에 앞서 전술포치를 하고 있는 문호일. 

 

장사금덕에서 4년간 뛰다가 2011년 2월 2일에 상해신화로 이적한 문호일은 그 해 아시아축구련맹 챔피언스리그를 뛰면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그라운드를 누볐다. 3월 16일 저녁에 있은 원정경기에서 수원삼성에 4:0으로 졌는데 그 때 해트트릭을 기록한 24살 나는 하태균에 대한 인상이 매우 깊었고 후날에 연변팀에 와서 뽈을 찬다니 매우 기뻤다고 한다. 

 

그 후 문호일은 2013년엔 심양심북, 2014년엔 심양중택 등 팀으로 이적하면서 뽈을 찼지만 줄곧 고향에 돌아와서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다. 그는 장사금덕에 있을 때를 회억하면서 조명이 부상으로 너무 일찍 고향에 돌아가니 허전하기 그지없었다고 말한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늘 부모님이 끓여주던 장국과 김치가 그리웠고 디노비치 감독이 키가 작다고 공격선 주력선수로 써주지 않아 연변에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고 한다. 그 후 많은 팀들에서 대량의 외적선수들을 공격수로 인입하다 보니 주력립지가 곤난하게 될 때가 많았고 키퍼를 빼고는 미드필더, 수비수로까지 뛰였다고 말하는 호일이의 눈가에는 이슬이 반짝이기까지 하였다. 

 

“연변팀 유니폼을 입고 출전할 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입장하면서 관중들의 박수를 받을 때면 저도 모르게 피가 끓고 긴장해지지요. 부모형제와 친구들이 지켜보는 축구장에서 뽈을 찰 때면 가슴은 또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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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시즌 갑급리그에서 우승을 한 뒤. 

 

자기를 축구를 위해서 이 세상에 태여난 사람이라고 말하기 좋아하는 문호일은 2015년에 고향팀으로 돌아왔지만 최종 조리감독으로 연변팀의 슈퍼리그진출과 2년 만의 강급을 지켜보게 되였다. 

 

우리 민족의 전통무용을 배우고 현재 한국에서 무용관련사업을 하고 있는 안해와는 선수시절부터 기러기부부로 일년 치고 떨어져있는 시간이 함께 있는 시간보다 많다고 한다.

 

2015년부터 4년간 박태하감독을 보좌해왔던 문호일은 사랑하는 연변팀을 떠나 국가녀자축구대표팀 조리감독으로 가게 되였다. 

 

국가녀자축구대표팀의 조리감독으로 축구인생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문호일에게는 또 하나의 축구꿈이 생겼다. 

 

“많이 보고 많이 배워서 언젠가는 연변축구팀의 감독으로 중국축구슈퍼리그를 뛰고 싶습니다.” 

/길림신문 김룡 김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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